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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散文] 베트남남부기행®

전설의 사원, 포나가르

by 봄의과수원 2021. 7. 27.

하루를 더 머물러야 했다. 베트남 여행 계획을 짜고 항공권과 숙소를 예약했다. 예약한 항공사가 일주일 전에 일방적 취소하는 바람에 수습한다고 한 참을 걸렸다. 미처 몰랐지만 그 항공사는 취소하기로 유명한 항공사였다. 그리고 마지막 날 일정을 정하지 못했다. 훈은 냐짱에 와서도 여행이 아닌 업무를 보듯 계속 e메일과 전화로 분주하다. 취소 관련 답변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리고 다시 호찌민으로 돌아가야 하는 비행기 편도 구해야 한다. 예약을 미리 해두어도 또 취소되지 않을까 걱정이지만 다른 항공사를 이용하기에는 비용이 너무 많이 발생하여 고민이 되었다. 선택을 어쩔 수 없었다. 조금 일찍 호찌민으로 출발할 계획을 세우고 비행기 편을 예약했다. 꼬박 하루 호찌민에서 보내야 한다. 계획이 없다.

오늘도 정해진 계획은 없다. 어디를 갈까 서로 고민해보지만 결정 장애의 세 남자는 딱히 갈 곳이 없다. 인터넷 검색을 하니 유적지가 하나 있다. 참파 유적이다.

차를 타고 30분 정도 거리지만 가격이 싼 베트남의 택시는 그곳으로 우리를 편안하게 인도했다. 택시를 타면 구글 지도는 한손에 항상 켜져 있다. 혹시나 다른 길로 가지나 않을까 하는 여행자의 믿지 못하는 마음 때문이기도 하고 이곳에 대한 좋지 않은 정보 때문이기도 했다.

사원의 입구는 볼품없이 한적하다. 더운 날씨 때문인지 유명한 유적이 아니라서 일까 몇몇 사람이 표를 구입하고 있다. 표를 내밀고 입구를 지나 계단을 오른다. 흙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하나둘씩 눈에 들어오고 이미 입장한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작은 동산에 위치한 유적지는 전망이 제법 좋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높은 산이 없어서 주변 경치가 모두 보였다. 태국에서 봤던 화려한 사원도 아니고 불교 사원 같지도 않지만 흙빛이라 그럴까 낯선 느낌이 들지 않는다.

매표소와는 달리 주사당과 부사당 사이에 제법 많은 사람들이 운집해 있어 자연스럽게 그곳으로 향했다. 전통복장을 한 여인들과 악기를 들고 있는 남자는 무언가 분주하게 서두른다. 곧 공연을 할 분위기다. 사람들의 기대와 호기심은 부푼 풍선처럼 커지고 공연은 시작되었다. 하노이에서 들었던 익숙한 멜로디다. 악기 소리에 무희들은 화려하지 않지만 단아한 춤사위가 시작되었다. 손에 든 항아리는 무희와 한 몸이 되어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동양의 춤이다. 서양의 춤은 화려하고 요란스럽다. 그러나 동양의 춤은 언제나 여백이 있고 단아하다. 훈이 서양인이었다면 또 다르게 느꼈을 지도.

가진 지식에 따라 여행은 달라진다. 딱히 공부라는 것을 하고 간 여행이 아니라 그저 간 여행 속에 삶을 배우고 지식도 얻는다. 그리고 돌아와 다시 추억하며 궁금증을 해소한다. 여행을 다녀와서 참파 유적이 궁금했다.

 

참파 유적은 힌두교의 유적이다. 시내에서 다소 외각 지역에 위치한 이 유적의 이름은‘포 나가르 사원(Po Nagar Tower)’이다. 774년 자바의 침입으로 불타기 전에는 목조 건물이었다고 한다. “마치 식인귀 같고 염라대왕처럼 두렵고 무서운 사람들과 흡사했으며 신상 무라캉카를 탈취하고 신이 거주하는 사원에 불을 질렀다”(잊혀진 참파.194쪽/포 나가르비문 38)에는 그렇게 기록되어있다. 그리고 784년 다시 건축을 하였다. 그러나 어디에도 목조 건축물이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황토 빛 흙빛이었다. 사원의 영광도 몇몇 신상만이 보여줄 뿐이다.

‘포 나가르 사원(Po Nagar Tower)’은 냐짱 시내에서 2Km 정도 떨어져 있고 바다를 지키는 빈랑족의 수호신을 모시고 있다. 약 152평(500㎡) 정도의 넓이에 주사당을 중심으로 두 개의 부사당과 네의 탑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입구를 통해 계단을 올라갔을 때에 잘 보이지 않던 열 개의 그리스 신전의 기둥 같기도 했던 팔각형의 열주(列柱) ‘만다파’가 자리 잡고 있다. 이 사원의 모습도 전쟁으로 인해 파괴되었고 지금의 모습만 남았다.

포 나가르 사당 모습은 빛이 바랬지만 주위에 줄 지어 서 있는 사람들의 모습과 온갖 장식으로 둘러싸인 모습이 주 사당임을 말해주었다.

그 나라에 가면 그 나라의 문화가 있다. 태국에 갔을 때에도 왕실이 있는 사원을 방문할 때에 ‘샌들을 신지 말아야 한다.’, ‘반바지는 안 됩니다.’등의 금기 사항이 있었다. 금기 사항을 지키지 않을 때에는 공안들이 제지를 하고 복장을 다시 갖춰야 입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곳 사원에 공안이 없고 간혹 지나가는 관리원 복장의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한쪽 공간에 마련된 가게 앞에 승복처럼 보이는 가운이 자리 잡고 있고 다수의 사람들은 그 옷을 입고 신발을 벗고 사원에 줄지어 들어간다. 그리도 다른 사람들은 옷을 입지 않고 정숙한 분위기와 호기심 어린 눈빛만으로 입장을 했다.

“우리도 옷 입어야 되는 것 아닙니까”

“그냥 가는 사람도 있는데”

그렇게 일행은 정숙한 마음을 가지고 입장을 했다. 사당 가운데는 분향하는 향로가 자리 잡고 있으며 베트남인들은 향을 피워 기도하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한두 평 될까 말까 한 공간에는 사원의 모습을 궁금해하는 관광객들과 현지인들로 가득 찼다. 엄숙한 분위기 때문일까 비좁다고 느껴질 만한 공간인데도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사람들은 자기들이 할 일만을 하고 돌아섰다.

사당의 신은 하늘로부터 내려온 선녀 천의의 전설이 있다. ‘선녀 천의가 대전산으로 내려왔다. 그때 마치 참외 재배하면서 살고 있던 노부부가 잘 익은 참외는 매일 따가자 도둑을 잡기 위해 밤을 지키다 도둑인 줄 알고 잡았던 사람이 소녀였다. 그러다 소녀와 같이 생활하게 되었다.

어느 날 큰 홍수가 찾아왔고 소녀는 삼신산의 옛 장면을 생각하여 꽃과 돌을 옮겨 산처럼 만들었다. 이 장면을 본 할아버지는 화를 내자 떠내려 오는 침향나무의 일종인 가남 나무를 보고 소녀는 변신하여 그 나무속으로 숨었다. 그 나무는 북쪽으로 떠내려갔고 사람들은 그 나무를 신기하고 이상하게 생각하여 나무를 옮기려 했으나 너무 무거워 옮길 수 없었다. 이 소식에 왕궁의 태자가 알고 왕궁으로 옮겼고 나무속에서 소녀를 발견했다. 그리고 둘은 결혼을 했다. 마치 심봉사의 눈을 고치려고 인당수(印塘水)에 빠진 소녀가 연꽃에서 발견된 이야기와 흡사하게 느껴졌다.

왕자와 살던 선녀는 아들과 딸을 낳고 살았지만 지상에서 처음 살았던 곳을 그리워하다 또다시 변신하여 향나무 속으로 숨어버린다. 그 나무는 또 떠내려가 과거에 살았던 대전산으로 내려간다. 노부부는 이미 죽었으나 사람들에게 규칙을 만들고 제사를 가르쳤고 산에서 돌을 캐내 신상을 만들어 놓고 하늘로 갔다.

부인이 찾기 위해 태자는 부하들을 뒤쫓게 하였는데 부하들은 주민들을 괴롭히고 불경스러운 행동을 하자 홀연히 바람이 일어 배를 전복시키고 돌덩이가 되게 하였다. 이때부터 부인의 영혼이 종종 나타나고 산등성에서 흰 코끼리를 탄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존경했고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도와주어 신성한 여신으로 경배하였다. 그리고 탑을 세워 경배했다. 탑 안에 있는 꽃과 과일은 모든 방문자가 먹을 수 있으나 가져갈 수 없고 날씨가 좋은 날에는 야생의 동물과 바다생물들이 탐에 모였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베트남 종합 지리서 베트남 통지 中에서)

참파 왕국은 1300년간 베트남 중부를 호령했던 왕국이다. 그 유적은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우리가 거쳐 왔던 판티엣(무이네)에도 유적이 있었다. 현지에서 외국인들이 자가로 운전만 할 수 있었다면 모든 유적지를 한 번 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를 알면 재미있다. 우리의 일상이 이야기이다. 내러티브가 있는 삶이기에 때로는 즐겁기도 하고 때로는 슬프기도 하다. 희로애락(喜怒哀樂)이 있는 삶이다. 이곳도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이기에 이야기가 있다. 그저 떠나서 그저 보고 오는 여행도 기억에 많이 남지만 역사를 알고 문화를 알면 그 여행을 즐겁고 더욱 기억에 남는다.

포 나가르(Po Nagar Tower) 주 사당의 높이는 28미터의 아담한 크기이다. 4 각형의 탑에 3층 지붕으로 구성되어있다. 다양한 신상들이 부조와 환조로 구성되어 있어 미술사학자들은 이 사원의 양식을 ‘포 나가르 양식’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포 나가르 주 사당에 장식되어 있는 부조는‘마히샤마르디니(Mahishasuramardini)’이다. 힌두 여신으로 ‘바가바티(Bhagavati)’의 또 다른 이름으로 ‘두르가(Durga)’라고 불리기도 한다.

사원 위에 있는 작은 조각들은 마치 경복궁의 잡상을 떠올리게 한다. 이 신상들마다 제 각기 사연과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이 이야기를 뒤로 하고 우리는 팔각형이 열주를 맞이한다. 지붕이 있었다고 하는 이 팔각 주의 모습은 좁은 공간에 배치되어 다소 웅장한 느낌이 덜 했다. 그러나 그리스 신전이나 넓은 대지위에 펼쳐졌으면 그 웅장함이 더 하지 않았을까? 왜 이 200평도 안 되는 산 위에 신전이 있었을까?라는 의문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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